• 한국의 공산주의자들⓶ 박헌영과 공산당 재건

      날짜: 2020. 04. 04  글쓴이 : 양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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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공산주의자들박헌영과 공산당 재건

         

        1. 박헌영, 주세죽의 모스크바 시절

        1928. 조선 공산당, 네 번에 걸친 탄압으로 와해

        1928. 8 박헌영, 주세죽 조선 탈출. 10월까지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쁘르(국제혁명가 구원회)의 후원으로 요양. 11. 5 모스크바 도착

         

        1929. 1. 18 박헌영, “모스크바에서 제일 좋은 학교국제레닌학교 입학

        1929. 2 소련공산당 입당. 주세죽, 동방노력자 공산대학(모스크바 공산대학) 입학

        국제레닌학교(박헌영, 김단야)와 동방노력자 공산대학(김정하, 권오직)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 재건위원회결성

         

        2. 김단야가 주도한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

        1929년 코민테른의 공산당 재건 명령 : 김단야, 조두원, 김정하 3+ 8인 조선 파견

        서울, 평양, 대구, 부산, 함흥, 원산, 인천, 마산 등 8개 지역에 조직 건설

        부산방적 동맹 파업 선동, 인천 가등 정미소 파업 투쟁

         

        1930. 박헌영, 코민테른 산하 조선문제 3인 위원회 위원으로 선임

        1930. 2 김단야 모스크바 복귀

        1930. 3.1운동 11주년을 맞이하여 시위를 선동하는 격문 발각, 대부분 체포

         

        1930. 9 김단야 상해 파송. 1931. 1 <꼼뮤니스트> 창간호 : 공장, 광산, 철도, 부두 등 계급 투쟁의 분화구 속으로! 그 속에서 선전하라, 조직하라, 투쟁의 불을 지르라!

        1931. 5. 박헌영, “공장 내 야체이카를 어떻게 조직할까?” <꼼뮤니스트> 2,3

        1931. 서울, 인천, 부산, 평양, 청진에 9개의 공장핵 건설

        <꼼뮤니스트> 배포자 배치 : 서울, 부산, 마산, 대구, 인천, 신의주, 평양

        공장신문 발행 : 부산 <노동자>, 마산(이승엽) <볼셰비키>, 신의주 <횃불>

        일제의 대량학살, 전쟁 반대 전단 2만부 배포

         

        파업투쟁 : 인천 정미소 파업, 마산 부두 노동자 파업, 평양 시멘트 공장 파업, 동해 방적공장 파업, 진남포 정미소 파업, 밀양 철도 노동자 파업, 제주도 해녀 투쟁,

        창원, 진영, 영천의 농민 투쟁 영천 소작인 투쟁에 신의주 조직원 파견

         

        일본의 공산당원 다까다니, 1932년 모스크바 공산대학 졸업, <레닌·스탈린·말렌코프>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며 <동아일보>의 발행인이었던 김성수

        제네바에서 발간되던라 뜨리뷴 도리앙1933221일자 머릿 기사에 나타난 이승만.

         

        3. 상해의 공산당 재건운동과 <꼼뮤니스트>

        1932. 1. 25 박헌영과 주세죽 부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참가를 위해 상해에 도착

        김단야와 박헌영, “조선에서 코민테른의 직접적 지도를 받아 공산주의 운동의 조직가가 될 것

        1932 김단야의 글 세계 노동자들의 조국인 소련 수호

         

        1932. 3 <꼼뮤니스트> 4. 박헌영의 글 코민테른의 전략적 슬로건인 소련방위

        소련 사회주의 건설이 크게 성공하는 것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꼼뮤니스트>는 코민테른을 지지하는 무기

         

        코민테른 가입 조건 14: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에 가입하조자 하는 모든 정당은 반혁명 세력과 투쟁하고 있는 소련에 대하여 무조건의 지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공산주의자의 신조 제9: 세계 공산주의, 모스크바에 대한 충성은 자기 나라에 대한 충성에 우선한다.

         

        시편 135.15-16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예례미야 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마태복음 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932. 인천 메이데이 투쟁. 성냥공장 노동자 350명 참여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조직 와해

        국경 연결자인 독고전이 이중간첩 행위, 국내연결자인 김형선 체포

         

        4. 박헌영의 체포와 김단야의 최후

        1933. 7.5 상해에서 일본 경찰이 박헌영 체포 - 국내 압송

         

        1934 김단야와 주세죽, 모스크바 복귀와 결혼, 김단야, 동방노력자 공산대학 조선민족부 조선과장으로 공산당 재건 운동 지휘, 박헌영의 아버지 박현주 사망

         

        1937. 11. 5 김단야, “일제의 밀정혐의로 소련 비밀경찰에게 체포, 처형

        전 조선공산당원 김춘성(이성태)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비서부 앞으로 작성한 상신서

        1938. 5. 22 주세죽, “1급 범죄자의 아내이자 사회적 위험분자5년간 카자흐스탄 유배

         

        5. 박헌영의 출옥과 공산당 재건

        1939. 9 출옥한 박헌영. 경성콤그룹의 책임자, 기관지 <공산주의자> - <콤뮤니스트>로 이름 변경

         

        1939. 12 - 1940. 1 40일 동안 청주 비밀 아지트에 기거하면서 공산당 재건 운동

        1941. 3. 21 정순년과의 사이에서 아들 박병삼 출생

        1941. 가을 경성콤그룹 제 2차 검거사건을 피해 계속 도피, “박헌영은 국외로 탈출하였다

         

        1942. 12 - 1945. 8. 15 일본경찰의 검거망을 피하여 광주로 피신

        경성의 소련영사관과 비밀리에 연락, 전남 지역에서 공산당 재건활동

         

        1945. 8. 15 해방, 서울 거리에서 박헌영의 출현을 촉구하는 삐라가 나붙다

        근로대중의 위대한 지도자 朴憲永선생은 어서 나와 우리를 지도해 달라!”

        1945. 8. 18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 결성, <해방일보>창간 결정, 소련 영사관과 접촉

         

        1945. 9. 11 조선공산당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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