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공산주의자들 ⓷ 박헌영과 대한민국의 대결

      날짜: 2020. 04. 04  글쓴이 : 양주성

      조회수 : 137
      추천 : 0

      목록
      • 한국의 공산주의자들 박헌영과 대한민국의 대결

        (이호목사 강의안)

         

        #1. 1945. 8. 15 해방과 여운형, 건국준비위원회(건준)

        일본은 패망, 미군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 공백기의 관리를 일본이 여운형에게 맡겼다.

        816, 공산주의 지도자 이강국과 최용달의 입회 아래 1만여명의 정치범 석방

         

        1945. 9. 6 “인민공화국 앞에는 이승만을 비롯해서 김규식, 김구, 김성수 등 민족주의자의 이름, 뒤로 갈수록 대부분 공산주의자들. 전체 내각 55명 중 공산주의자가 39명이었다.

         

        1945. 9 . 8 미군 서울 도착, 10. 10 미국 군정장관 아놀드, “인민공화국은 거짓 정부

         

        1945. 10. 16 이승만 귀국 : 박헌영, 환영준비위원회 구성, 인민공화국의 성명 우리 인공(人共)의 주석, 이승만 박사 귀국하셨다. 그는 3천만 민중의 경앙의 적()이었던 만큼 전국은 환호에 넘치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에게 충심의 감사와 만강의 환영을 바친다

         

        1945. 10. 27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과 박헌영의 회견

        우리는 당신 및 미군정청과의 긴밀한 우호협력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제기한 정강은 처음부터 진보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폭력이나 습격 등의 행위를 자행할 수 없고, 이와 마찬가지로 유혈혁명을 선동할 수 없다.”

         

        1945. 11. 30. 조선공산당 대표 박헌영 명의의 정견 발표, 진보적 민주주의 깃발 밑으로

         

        1945. 12. 20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국권(國權)을 없이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사리(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을 속이며, 도당(徒黨)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군기(軍器)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소위 공화국이라는 명사(名詞)를 조작하야 국민 전체의 분열상태를 세인(世人)에게 선전하기에 이르렀더니,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간계(奸計)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해서 남의 노예를 만들고 저희 사욕(私慾)을 채우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잘하나 못하나 우리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지고 살려는 것을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形容(형용)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먼저 그 사람들을 회유(誨諭)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 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친부형(親父兄) 친자질(親子姪)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된다.”

        1945. 12. 23 박헌영의 성명, “세계 민주주의 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 이승만을 민족반역자 및 친일파 세력의 수령이라고 비난

         

        측근에게 한 이승만의 말, “생각하면 박헌영이란 사람 불쌍하다. 그가 나아갈 유일한 길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련 제일주의 공산주의가 아니고 국제공산주의를 가장한 민족적 공산주의여야 하는 건데, 그 사람 대국을 보는 눈이 없고 진실을 파악하는 눈이 없어. 소련의 총애를 얻으려고 애써보았자 스탈린의 후견을 받은 것은 김일성이야. 박헌영이 설 자리는 김일성이란 젊은 놈을 모시고 받들 자리밖에 없어. 한데 그게 오래 갈 것 같은가? 박헌영은 이윽고 제물이 되고 말어.

        박헌영이 심복을 잃고 북쪽과 고립되는 위험을 견디면서도 생각의 중심을 서울에 두고 민족적 공산주의를 할 의사가 있으면, 우리 정부가 섰을 때 나는 그를 영국의 노동당처럼 대우할 수가 있을 거다. 그런데 이젠 끝났어. 그 사람 보고 있으니 골수에까지 러시아 숭배의 병균이 침투해버렸더구먼. 아까운 인재가 방향감각의 상실로 멸망하는 꼴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2. 1945. 12. 16-26 모스크바 3상회의 미국, 소련, 영국 : 한국에 대한 5년간의 신탁통치

        박헌영 :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조선의 정세와 민족문제 등을 바로 보지 못한 것

        조선공산당 대변인 정태식 : “5년은 커녕 5개월의 통치도 절대로 반대한다.”

        조선공산당 서울시 위원장 김삼룡 : “참으로 우리 민족의 치욕이다.”

         

        1945. 12.29-1946. 1. 1 평양에서 소련군 지도부와 김일성, 박헌영의 비밀 회담

        1946. 1. 2 박헌영, “문제의 5년 기한은 그 책임이 삼국회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인즉 우리 민족 자체의 결점 등에 있다고 우리는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1946. 1. 3 박헌영 이날은 815일과 같이 민중은 흥분하고 감격하여도 좋은 날이었다. 왜 그러냐 하면, 1228일은 815일과 함께 조선민족에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역사적 선언의 날인 때문이다. 815일이 일제(日帝)적 체제를 파괴한 날이라면, 1228일은 조선 인민적 체제를 수립하려는 날인 것이다.”

         

        #3. 우익의 입장 : 신탁통치 반대 운동

         

        #4. 1946. 2. 9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북한정권) 수립

        전국민의 재산을 빼앗아서 국유화, 군대까지 만들었다면 임시”, “인민위원회인가 독재 권력인가?‘

         

        #5. 1946. 5. 18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6. 1946. 7. 1 김일성과 박헌영, 모스크바 방문

        스탈린 : 공산당, 인민당, 신민당 등 좌익 3당 통합의 필요성 제기

         

        1946. 7 중국 공산군의 패배 이후 스탈린의 신전술 지령, 박헌영의 행동지침

        --- 미군정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 파업과 폭동, 암살 주도

         

        1946. 9. 6 미군정의 명령으로 3개 좌익 신문이 폐쇄, 박헌영 등 공산당 지도자 체포령

        1946. 9. 6 혹은 9.29 박헌영, 영구차의 관 속에 들어가서 시체로 위장, 북한으로 피신

         

        #7. 1946. 9월 총파업 10. 1 대구폭동

        붉은 대학살의 저자 송효순, 대구 폭동 당시 폭도들의 10가지 학살 수법

        총살 죽창과 도검으로 마구찌르기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생화장하기 곡괭이·쇠망치··몽둥이 등 농기구를 사용해 타살 또는 생매장 양민을 학살하기 전이나 후에 새끼로 목을 옭아 자동차에 매단 후 거리로 끌고 다니기 나무에 매달아 때려죽이기 생사람의 몸에 큰 돌을 달아 물에 던져 수장(水葬) 부녀자들의 옷을 벗겨 사지를 찢거나 잘라 죽이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를 총검과 죽창으로 마구 찌르기 죽은 사람의 얼굴에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시체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들기

         

        소련의 지원 : 남조선 투쟁기금 300만원과 122만 루블을 조선 공산당에 지원.

        1946108일 총파업의 전위부대인 전평 의장 허성택이 월북하여 소련군정의 로마넨코와 회담

        미군정의 폭동 진압 : 공산당원 7천여 명 검거. 1500여명 구속, 경북지역의 공산당 궤멸

         

        #8. 1946. 11. 23 남로당 창당 : 북한에는 김일성의 북로당, 남한에는 박헌영의 남로당

        현재 북로당과 남로당을 합친 노동당이 북한을 지배

         

        #9. 제주 4.3사태와 김달삼 : 일본군 소위 / 4.3 사태 지휘 / 6.25 북한군 장교

        섬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 3만여명 이상이 희생되고 이재민 10만 명이 발생

         

        1948. 9. 9 박헌영, 북한의 부수상 겸 외무상 취임

         

        #10. 1948. 10. 19 여수/순천 반란, “혁명과업 6개항

        우리는 유일하며 통일된 민족적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11. 박헌영은 왜 소련에 그토록 충성했을까?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 가입하고자 하는 모든 정당은 반혁명 세력과 투쟁하고 있는 소련에 대하여 무조건의 지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 코민테른 가입조건 14

        세계 공산주의, 모스크바에 대한 충성은 자기 나라에 대한 충성에 우선한다.”

        - 공산주의자의 신조 제9

         

        #12. 공산주의자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이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계급투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이며, 자본가 계급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레닌, <청년동맹의 임무>

         

        어떠한 행위도 예컨대 살인이나 양친에 대한 밀고라도 공산주의의 목적에 도움이 되면 정당화된다.” -<공산주의자의 신조 제10>

         

        공산주의자는 법률 위반, 거짓말, 속임수, 사실 은폐 따위를 예사로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 <공산주의에 있어서의 좌익소아병> 중에서

         

        #13. 공산주의자들은 왜 그렇게 잔인할까?

        반동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서 그 지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

        공산주의의 적들로 하여금 공포로 전율케 하라!”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